다들 어떻게 지내시나요? 되게 오랜만입니다! ^_^

이번에 만법귀일이 100번째로 끝이나서요, 마지막 글을 올려봅니다. 캐나다는 다들 어떠신가요, 다들 그대로이실 것 같습니다. 모두들, 잘 지내세요!

<스스로의 karma로 부터 비롯되는 삶>

 개개인 모두 스스로의 karma를 가지고 스스로의 세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개개인의 karma가 당연한 것이며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karma라는 세상에서 나는 무기력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걸, 나는 나의 스스로의 karma에만 힘을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의 세상은 다른 사람이 힘을 가지고 있기에 나의 power가 뻗칠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모두 스스로의 세상의 틀에서 살아가며 그들만의 freewill을 발휘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상대방의 말, 행동, 모습, 등은 모두 그들의 karma이기 때문에 나의 세상에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각자 그들의 세상이라는 벽에, 필터에 나의 말들은 튕겨져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의 업을 등에 지고 걸어가기에,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나만의 karma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것은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아름답게 닦아나갈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help’그리고 나의 karma-

 내가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은, ‘궁극적인목적은 life enhance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행복한 이유들도 너무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렇다 생각한다. 내가 넘어가야 할 산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면 다른 돌아가는 길을 배우는 것부터, 꿈이 정해진다면 그 꿈을 어떤 식으로 세상에 풀어나갈 것인지, 왜 나는 세상이란, 인생이란 산 앞에서 슬픈 눈물을 흘려야만 했는지, 나의 인생에서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한 해석이나, 더 넓은 세상이란, 새로운 세상의 파장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는 것, 돌아서 가야 했을지도 모르는 길을 선생님이라는 마당에서 조금 덜 긴장하고 조금 덜 놀라며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는 것.

 한국에 돌아오니 도움이라는 것이 더 아프고 더 슬프고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순간순간 재생되는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들 중에서 나는 많이 외로웠고 외로웠다는 것을. 그런 기분 아는가. 아무리 소리쳐도 내 목소리가 저 밖으로 나아가지 않는, 저 검은 세상으로 사라져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그 어둠에 내가 질식해 버릴 것만 같아서, 이 곳은 잘못 들어온 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 다른 선택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 때 세상에 나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중학교 사춘기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이 고독,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처음에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 생소한 기분이 외로움, 고독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쳐주는 그늘아래에 있다면 새로운 세상이 내 인생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더라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사춘기 시기가 내게 중요했음을, 그 시기에 무언가 missing된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시기에 내가 잃어버린 puzzle조각은 무엇일까. ‘희망’? ‘’? ‘친구’? ‘self-esteem’? 나는 지금 내가 잊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있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그 상처의 씨앗이 존재하며 상처의 씨앗은 씻겨 내려갈 수 있다. 일이 풀리는 과정에 예상과 다름이 존재한다면, 간단하다.‘상처의 씨앗으로부터 비롯되는 나의 reaction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reaction은 스스로의 karma인 것뿐인 것이다.

-karma의 해결방법이 아닌, 그것-

 열심히현실에 주어진 공부를 한다고 해서 내 인생의 karma가 풀리지는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간다. 고등학교, ‘열심히한다면 내 인생의 아픔이 풀려나가지 않을까 그 동앗줄을 잡았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인생을 행복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조건은 맹목적인 열심히하는 것이 아님이 이해가 간다. 그래서 안 되었던 것이구나. 열심히 밀어붙이기만 했기 때문에 안되었던 것이구나. ‘이유의 존재가 목말랐으며 배고팠던 것이구나. 고등학교 때 열심히했던 내게 수확할 수 있는 계절이 주어졌다면 나는 그 현실이 옳다고 믿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길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었던 그 상황들이 비극이었으나 희극이 되어진 것임을 생각해 본다.

-‘I am that I am-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누가 전해준 말씀이라 전할까요 라는 질문에 ‘I am that I am’이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에서 ‘I am that I am’이라는 문장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에 저는 저입니다.’라는, 대답은 스스로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내게 뒤통수를 친 느낌이었다. , 그렇지. 나는 어떤 명찰을 달고 있건 어떤 옷을 입고 있건 나일 뿐인 것이지. ‘I am that I am’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