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2012년 아난다마
난 운이 좋게도 나보다 어린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그림과 영어를 지도하면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사실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에너지를 받으며 살고 있는 듯하다. 20대에 희망, 영원할 것만 같던 가슴 속의 꿈은 30대에 이르러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서 잊혀지기도 하고 부질없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막 망망대해처럼 자신 앞에 놓여진 삶을 힘차게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희망이라는 것이 뭔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라는 것이 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
젊은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피어 오른다. 내일을 향한 걱정이 있더라도 밝고 활달한 친구들을 보면서 늘 심각하고 현실적인 생각에 갇혀 생각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싶다. 어느 순간부터 무지하게 심각해진 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살아가면서 철없이 실실 대지 말라고 내게 일침을 놓던 연장자들이 내 주변에 있었던 것 같다. 웃고 까불면 그냥 생각 없고 철 없는 사람으로 치부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무거운 군화에 눌린 풀처럼 그렇게 꾹꾹 내 자신을 누르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그렇게 억눌린 상황에 익숙해지다보니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스스로 내 마음의 문을 닫고 자중한다는 이유로 모든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자제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행동을 하는 것. 정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일단 어쨌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거짓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수의 생각과 반목하는 생각이라도 내 생각이 있으면 말하고 싶고, 나라는 사람을 눈치보는 것 없이 솔직하게 설명하고 싶다. 돈이 없어도 내가 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고 싶지가 않다. 내 상황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유라는 것은 그 상황자체와 자신을 구별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생기는 마음가짐 같다. 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던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여유인 것 같다. 여유는 자신에 대한 깊은 진실을 알고 있는 자의 것이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간혹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많은 것을 투자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변덕스럽게 요동치는지를 깨닫는다면 다른 사람에게서부터 받는 인정에 목숨 걸고 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글을 쓰면서 여전히 내가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 삶을 소비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도 한 때 내가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던 적이 있다. 정말 솔직한 내 모습, 나의 진실을 꺼내놓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나중에는 내 진실을 꺼내놓고 소통해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그것이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다. 결과는 나도 힘들었고 상대방에게도 불편한 마음을 들게 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언제 변할 지 모르는 타인의 지지와 사랑에 생을 바치기 보다는 인정을 받든 못 받든 가장 솔직하고 정직하게 나만의 방법으로 내 생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정직. 정직이라는 말은 쉬워보이지만 사실 살아가면서 매 순간에 나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는 어려운 덕목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솔직해지고 정직하게 대하는 것은 그나마 노력하면 되지만 스스로에게 속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내공이 필요한 것 같았다. 또한 내가 불리해지더라도 상황을 정직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다. 이 정직함이라는 것이 쉽진 않지만 사람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하는 덕목인 것 같다.
이 시대에는 이른바 사회적 활동 (socializing), 사교활동이 매우 중요한 시대이다. 페이스 북에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영향력이 높아지고 수많은 인간관계가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인간관계 안에서 한 개인이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진실인지 아니면 얕은 표면 위의 모습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이다. 금권이 강해져서 돈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듯 보여지는 이 시대에 사람과 사람이 결국 무엇을 교류하려고 만남을 갖는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된 것 같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를 다니던 코흘리개 시절부터 실수투성이였지만 순수했던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지 않았다. 좀더 돈이 많다거나, 좋은 집안이라던가, 공부를 잘할 다던가, 잘 생겼다 못생겼다 따지지 않았다. 친구에게 그들 자신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함께 어울려서 잘 놀 수 있는 친구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면 모두 그냥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리 커서 꼭 같이 살자면서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었던 단짝 친구도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조건없이, 계산 없이 사람을 만나던 그런 시절이였다. 다시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서 내 앞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이런 저런 조그마한 계산하는 마음을 걷어내고 사람을 바라보고 친구가 되고 싶다. 이럴 땐 어린아이와 같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린아이와 같은 조건 없는 마음을 갖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억지로 바꿔놓으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다. 내 앞의 사람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여유와 밝은 마음을 갖고 싶다.
이제는 내가 선배가 되고 연장자가 된 이 순간에 나는 정말이지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해주고 싶다. 물론 내가 허하지 않는다고 해도 멈출 아이들이 아니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