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Priority에 대하여.
Experiencer A로서의 경험;
집에 들어오니 벌써 저녁 10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어젯밤에도 늦게 잠자리에 든 데다가 오늘은 꽤 긴 시간 동안 일을 했던 터라 피곤함이 많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몇 주 전부터 한 번 보고 싶다고 얘기하던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터라 내키지 않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로 향했었다. 이것이 한두 번만 있었던 패턴은 아니었다. 만나서 서로 기운을 북돋워 주거나,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나누거나, 아니면 스스로는 보지 못하던 부분을 자각하게끔 도와주는 것도 아닌, 그저 무료하게 같은 공간에만 있다가 헤어지는 듯한 기억이 꽤나 오래되었던 것. 전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내게 지치지도 않고 그 친구는 항상 연락을 재개해왔고, 계속된 거절이 미안해진 나는 결국 이렇게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 그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후회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우유부단한 것일까? 친구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내키지는 않더라도 노력을 한 것인데 왜 남는 것은 에너지는 쭉 빠져버리고 내 할 일도 못한, 무책임한 나 뿐인걸까?
Observer A로서의 관찰;
A는 뭔가 더 이상 A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set of paradigm을 여태 붙들고 있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clarity는 조금 부족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전과 똑같이, 스스로를 blame하며 더욱 저조한 에너지 상태로 내려가는 생각과 행동만은 절대로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제는 A도 살고, 그 친구를 통해 나타나는 A의 또 다른 모습도 사는 길을 택하고 싶어한다.
첫 번째로 든 insight는 Friendship에 대한 definition을 재정립해보는 것이었다. 혹시 Experiencer A가 알고 있는 friendship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었는가? 상대방을 offend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설령 속마음을 숨기고 거짓으로 꾸며서 하는 말과 행동일지라도 일단은 "사이 좋은" 겉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는가?
의미 없는 신변잡기와 겉도는 말로 서로의 Ego만 마사지해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쓰는 것이 friendship은 결코 아닐 터이다.
'도반'이라는 말이 있다. 함께 거룩한 곳을 바라보며, 그 곳을 향하는 여정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들. 때로는 진실한 마음으로, 각자 혼자 있었다면 스스로는 미처 보지 못했을, 더욱 갈고 닦아가야 할 부분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존재.
나는 과연 그에게 어떤 friendship을 보여주고 있었던가?
두 번째로 든 insight는 Honesty와 Harmony에 대한 concept의 재점검이었다. A는 혹시 Honesty 가 Harmony를 깨뜨리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Harmony란 절대로 여럿이 그냥 둥글둥글 섞여있기만 한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여 있는 하나하나의 beauty를 살리면서도 그들이 함께 또 하나의 통합적인 beauty를 창출해낼 때, 우리는 함께 조화를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individual들이 모여 거대한 beauty를 향해 함께 움직여나갈 때, 그들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Honesty가 아닐까? Honesty가 없이는 그들 사이에 건강한 communication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렇다면 그들은 결국 모두 흩어져버리거나 또는 그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에 의해 부려지는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 Harmony를 깨뜨리는 행위를 경계하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종종 Honesty를 억누름으로써 individuality를 억압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말로써 이용되기도 하는 듯하다.
스스로의 솔직한 감정을, 판단을 억누르면서 거짓 꾸며낸 모습으로 바깥과 소통하며 동시에 그 만남에서 Harmony가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정한 Harmony란 어떤 것인지, 그를 위해 스스로에게, 우리 모두에게 정직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키워가자.
Friendship과 Harmony, Honesty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마지막으로 떠오른 insight는 결국 Priority의 문제였다.
As Within So Without, As Without So Within이라 하였다. 바깥으로 누군가에게 끌려 다닌다는 것은 안으로 내 안에 주인이 없다는 것과 같다. 내키지 않는 일에 시간을 쓰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중요하다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진실로 진실로 그것이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그것을 뒤로 미룬 채 소소한 일을 할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고 에너지를 소모하며, 결국 상대방도 자신이 환영 받고 있지 못함을 암묵적으로 느끼게 하고, 또 그것 때문에 더 큰 죄책감으로 빠져들고. 이것이 진정 A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은 무정하게 보일지라도 그 동안에 좀 더 스스로를 정리하고 끌어 모아 보다 아름다운 존재로 날마다 거듭나, 존재만으로도 주변에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 진정 A가 원하는 것인가?
명확 명료한 priority가 있는 사람은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지금 심고 있을 나의 사과나무는 무엇인가?
